"작품 번호 24번 이중섭 '황소'의 낙찰가를 세 번 호가(呼價)하겠습니다. 35억6000만원…."
지난달 29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은 낙찰봉 소리에 숨을 죽였다. 이중섭의 작품 '황소'가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두 번째로 높은 35억6000만원에 낙찰되는 순간이었다. '황소'의 낙찰가가 2007년에 세워진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의 낙찰가 45억2000만원을 경신하는지 관심을 모았지만, 두 번째 최고가에 만족해야 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황소'의 낙찰가가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침체된 미술시장에 새로운 계기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고가(高價) 작품이 물꼬를 터줘야, 화랑가와 아트페어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미술시장이 글로벌 마켓으로 확대되면서 경매시장은 국내·외가 함께 움직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홍콩 크리스티 관계자의 말은 이런 점에서 흘려들을 수 없다. 그는 한국 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백남준의 작품 가격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홍콩 크리스티 메이저 경매에서 백남준의 작품 '칭기즈칸의 복위'가 작년 11월 유찰되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이 지난 5월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칭기즈칸의 복위'는 경매가 아니라 개인 판매에 가까운 애프터세일을 통해 가까스로 팔렸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당시 경매 결과를 두고 "한국 미술관과 컬렉터들은 뭐했나"라는 분노 섞인 말이 나왔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쩡판즈는 세계 미술시장이 뜨거웠던 3년 전 "백남준은 내가 미술대학에서 배웠던 위대한 작가인데, 그의 작품 가격과 내 작품 가격이 비슷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지난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쩡판즈의 '앤디 워홀 초상'이 506만홍콩달러(약 7억7000만원)에 낙찰됐고, 백남준의 설치작품 '로켓십 투 버추얼 비너스(Rocketship to Virtual Venus)'는 290만홍콩달러(약 4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백남준과 함께 경매에 나온 중국의 작고 작가 천이페이의 작품은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6100만홍콩달러(약 93억원)에 팔렸다. 이를 본 국내 옥션 관계자는 "외국 컬렉터들이 한국 대표작가인 백남준의 가격이 무너지는 걸 보고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안 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작년 10월 중국 후난성에서는 중국 컬렉터가 미술 전시를 주최했다. 자신과 친구들이 소장한 위에민쥔 등 중국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미술 관계자 500여명을 2박3일 일정으로 초청했다. 미술시장이 침체되자 중국 작가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중국 현대미술이 건재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중국 작가를 앞다투어 잡으려는 것은 이런 노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미술은 문화를 넘어 경제력과 장기적인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됐다. 이중섭의 '황소' 경매가 작품에 등장하는 소의 기운찬 동세(動勢)처럼 한국 미술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