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기도하며 사역지를 구하던 음훈정 목사(당시 전도사)는 지인의 소개로 오대산 겟세마네 기도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서 기도하던중 기도원 사모님께서 알고 계시던 강동노회 영월시찰 미탄 중앙교회 문종복목사님에게 소개하여 평창동산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원화산교회 최인언장로(당시 집사)님과 함께 교회를 와 보고 장로님이 이런 교회를 어떻게 오겠느냐고 했지만 음훈정 목사님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와 보니 교회는 비었으며 이창걸 강도사님이 갑자기 가신 이후로 미탄 중앙교회 집사님께서 아이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1954년에 등기가 된 건물은 나무 골조에 진흙과 수수깡 벽으로 되었으며 회로 외벽을 마무리 한 집이었습니다. 지붕은 스레트로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집구조는 교회로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힘든 구조였으며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로 불편했습니다.
음훈정 목사님은 교회를 담임 할 마음을 가지고 미탄 중앙교회로 가 문종복 목사님을 뵙고 담임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그리 하기로 결정을 받았습니다. 준비를 하던 중 1994년 12월 31일 모포 하나만 가지고 버스를 타고 평창에 도착하였습니다. 밤에 추위에 떨며 자든 둥 마는 둥 하다가 일어나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1월 1일 첫 아침 예배를 드린 다음 수원으로 가 평창으로 이사 가기로 하고 수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수원의 전제소 있는 500만원중 200은 평창의 집세로 주고 300을 가지고 수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혼자 할 방법이 없어 벽지와 다자인 가게를 하고 있는 이제 막 신앙 생활을 시작한 바로 밑의 처남에게 부탁하여 사촌 처남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구조를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지붕과 외벽을 제외한 웬만한 벽과 칸막이를 허물고 새롭게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큰 쇠망치로 깨서 메웠습니다. 수원제일 감리교회에서 친분이 형님과 동서, 친구들이 최소한의 실비로 봉사하여 2개월 여 만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면서 추위와 싸우면서 공사를 했습니다. 잘 곳이 없어 미탄중앙교회 기도실 옆 유아실에서 자면서 아침이 되면 교회로 와서 다시 공사를 하곤 했습니다.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추어 갈 무렵 이제는 보일러를 깔고 미장을 해야 할 즈음 쓰던 보일러를 달아 놓고는 바닥 미장은 수원화산 제일 교회에 부탁하여 청년들과 미장을 하시는 집사님이 오셔서 해 주셨습니다.
평창의 2월은 아직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얼어버려 모래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래가 있다고 해도 빙산이라 깰 수가 없었습니다. 근천에 보니 바로 옆에 개미 슈퍼가 공사를 하고 남은 모래가 있어 양이 적당해 보여 나중에 갚아 주기로 하고 모래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공사 날자는 정해 지고 하나님께 날이 풀려 공사에 지장이 없게 해 주시기를 기도 드렸습니다. 그 날이 되어 날이 화창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래 빙산이 금방 녹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망치로 깨기 시작하였는데 쉽게 깨지질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어떻게 방법을 달라고 기도를 드렸으며 그때 앞에 날카로운 손이 달린 퇴비차가 지나가자 수원의 박집사님께서 그 차를 세워 저 모래를 좀 건드려 달라고 해 몇번을 치니 큰 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조각이 나자 망치로 깨는 일이 어렵지만은 않았으며 깨진 모래를 다지고 퍼 나르자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옷에 물이 묻고 흙이 묻어 모래를 나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형편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이 이루어 졌으며 교회 내부 수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