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7일 도쿄 긴자(銀座)의 한 상점 앞.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의 수도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이 긴자다. ‘시니세(老鋪)’로 불리는 오래된 점포가 즐비하고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늘어선 곳이다. 그러나 이곳 상점들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손님들도 물건을 ‘아이쇼핑’하거나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정작 물건을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메이지시대(1867~1912)에 개업했다는 한 점포의 주인은 “우리 가게가 문을 연 이래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활기 잃은 긴자 거리

요즘 일본에는 음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당장 눈앞에서는 ‘대형 사고’가 계속 터지는데 수습할 방법이 없다. 나아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장기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불투명하다.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국가전략 및 총체적 역량의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울한 소식은 끝이 없다. 일본 경제의 호황을 상징하던 국적항공사 일본항공(JAL)이 지난 1월 19일 법정관리를 신청하더니, 1월 27일에는 도쿄 긴자 한복판의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이 오는 12월 25일 문을 닫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즈음부터 불이 붙기 시작한 도요타자동차 리콜사태는 끝을 알 수 없을 지경이고, 지난 2월 10일에는 혼다자동차마저 100만대 가까운 리콜에 들어갔다. 이 외에도 국가부채 사상 최고, 노동인구 사상 최저 등 연일 부정적인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 상황은 ‘잃어버린 10년’이니, ‘잃어버린 20년’이니 하는 말 자체가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다.

이 가운데서도 일본인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물론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다.

도요타는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복합체다. 일본 제조업의 자랑인 안전과 기술 자체의 문제에서부터 글로벌 분업질서에 대한 대응의 문제, 거기에 미·일동맹 등 국가 전략의 문제 등 A부터 Z까지 모든 게 담겨 있다.

도요타 사태는 일본의 ‘모노즈쿠리’ 정신이 쇠퇴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는 일본 제조업을 상징하는 단어다. 직역하면 ‘물건 만들기’라는 뜻이지만, 혼신의 정성을 쏟아부어 당대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영어의 ‘생산·제조기술(Industrial Engineering)’과 차별화해 일본의 전통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로, ‘모노즈쿠리 대학’이라는 사립대학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말이다.

도요타가 일본 내 3만여개 부품업체로부터 공급받아 자체 생산한 제품의 시스템 결함을 인정했다는 것은 모노즈쿠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미래가 안 보인다”

도요타가 일본 내부의 문제와 국제문제를 모두 함축한 것이라면, 일본항공의 법정관리 신청은 일본 사회의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일본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된 고도성장 과정에서 벌어들인 돈을 ‘나눠 먹는 방식’으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각 지방에는 공항과 댐, 도로, 교량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됐다. 작년에 98번째 민간기 취항공항인 시즈오카공항이 문을 열었고, 2월 중에 99번째 이바라키공항이 문을 연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의료보험과 노인간호제도, 연금제도도 정비됐다.

경제가 잘나갈 때는 이런 체제가 유지됐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제로성장이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일본항공의 법정관리 신청은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의 폐점도 총수요 감소의 영향이 백화점 업계부터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16일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내수 확대를 통해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기본전략을 시행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전혀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도요타 리콜사태 등 대형 악재까지 이어지면서 어려움은 가중될 전망이다. 나아가 일본 사회 전체가 근본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모두들 얘기하면서도, 정치적 리더십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사석에서 만나는 일본인들 중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품이 클수록 후유증도 크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전세계에 두려움을 안겨주던 일본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지난 2월 5일 일본 나고야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차량 결함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photo 로이터

가장 큰 이유는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에 생긴 거품이 너무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거품이 클수록 후유증도 크게 마련이다. 1980년대에 형성된 일본경제의 거품은 2차대전 후 발생한 강대국의 거품 사례 중 가장 큰 것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무기로 미국시장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985년 미국은 일본을 압박해 당시 달러당 250엔대에서 움직이던 엔화 환율을 125엔으로 낮추라는 최후통첩을 했다. 미국의 압력에 일본은 굴복했다. 이른바 ‘플라자합의’다. 이후 엔화는 가파르게 절상(달러화 가치 하락)했다. 엔화가 절상되면 수출기업은 불리해진다.

당시 일본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였다. 일본 정부는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저금리 정책으로 전환했다. 1986년부터 1987년 초까지 일본의 정책금리는 5%에서 절반인 2.5%로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이상으로 자금이 풀리면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렸고 무분별하게 해외투자를 벌이면서 각 부문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일본 주가는 1980년대 후반에 약 3만9000포인트까지 올랐다. 2월 19일 현재 일본 주가는 10123.58포인트에 불과하다. 부동산도 폭등했다. 도쿄나 나고야 같은 대도시는 200~ 900%까지 올랐다. 거품이 컸던 만큼 후유증도 심각하고 치유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이 1990년을 전후해서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으로 온 것은 그만큼 1980년대의 거품이 컸다는 의미다.
 
잘못된 정책보다 방관이 낫다

일본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도 문제였다. 일본 정부는 거품이 터지기 시작한 초기부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서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과도한 거품으로 인해 발생한 불황은 차라리 거품이 터질 만큼 터질 때까지 방관하는 게 낫다. 그런 후 수요진작책을 써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너무 초기부터 돈을 쓰는 바람에 효과는 보지 못하고 개인과 기업의 정부 의존 성향만 키워놨다. 일본 정부는 이 과정에서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빚쟁이 정부가 됐고 이제는 돈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불황이 장기화되자 이제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소비 부진으로 수요가 위축되면 경제는 악순환의 덫에 빠지게 마련이다. ‘소비위축`→`매출감소`→`기업의 투자감소`→`소득감소`→`소비위축’. 지금 일본 경제가 이 꼴이다.

이밖에 세계 1위의 고령화 현상과 저출산율도 일본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후진적인 일본 정치는 자민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현 상황에서는 무망(無望)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넘어 ‘잃어버린 3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