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공항 인근에 있는 대형마트 '아샨' 식품 매장. 라면 코너에서 회사원 발레친 자이체프씨가 한국야쿠르트의 컵라면 '도시락' 1박스(24개들이)를 쇼핑 카트에 담았다. 그는 "다른 회사 라면은 맛이 없어 10~20% 정도 값이 비싸도 도시락 라면을 먹는다"며 "온 가족이 일주일에 4~5개씩 먹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라면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라면 진열대의 제품 중 절반 가까이가 야쿠르트 도시락 라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도시락'은 러시아 라면 시장에서 40%의 점유율로 1위에 올라 있다. 컵라면 시장만 놓고 보면 점유율이 60%다. 야쿠르트는 작년 러시아에서 이 라면 2억4000만개를 팔아 1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매출(60억원)의 30배 가까운 실적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수퍼마켓에서 현지인이 한국야쿠르트가 만든 도시락 라면을 고르고 있다.‘ 도시락’은 러시아 라면시장 점유율 40%로 1위에 올라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국내 식품업계가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도시락 라면이 대표적이다. '도시락'은 1980년대 말 부산항을 드나들던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갖다 팔면서 러시아에 소개됐다. 지금은 총 길이 9300㎞에 달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여행하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락은 러시아 전역 9800여개 수퍼마켓 중 97%에 들어가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005년 러시아에 공장을 세웠지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2008년 현지 공장을 증설하기 전까지 국내 생산 물량을 러시아에 팔아야 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롯데제과 '스파우트껌'이 인기다. 이 껌은 1977년 중동에서 처음 판매한 후 현재 중동 지역 껌 시장 점유율 1위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판매를 해보려고 했는데 인기가 별로 없어 이름을 바꿔 팔고 있지만, 롯데제과 껌 제품 가운데 판매 순위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포장 두부는 중국 베이징에서 7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CJ의 국내 포장 두부 시장 점유율은 25% 정도. CJ제일제당은 베이징 두부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중국 내 다른 대도시까지 두부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비스킷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오리온의 '고래밥'(왼쪽)과 러시아 시베리아·극동 지역에서 스낵시장 1위에 오른 빙그레 '꽃게랑'.
빙그레 '꽃게랑'은 러시아 시베리아·극동 지역에서 스낵 시장 1위에 올라 있다. 러시아에서 올리는 연간 매출은 2000만달러(약 240억원)로 국내 매출(100억원)의 2배 이상이다.

중국에서 오리온이 파는 '고래밥'은 비스킷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물고기가 많다'는 뜻의 '하오둬위(好多魚)'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고래밥은 중국에서 '好魚多' '魚多好'와 같은 식으로 중국어 순서만 바꾼 '짝퉁 제품'이 등장할 만큼 인기가 좋다. 고래밥의 중국 매출(720억원)은 국내(240억원)의 3배 수준이다.

현지화와 기발한 마케팅으로 시장 공략

이들 제품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꾸준한 현지화와 치밀한 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도시락 라면 판매를 담당하는 한국야쿠르트 이시몽 팀장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러시아인을 위해 쇠고기·닭고기 맛 라면을 내놓은 것이 인기 비결"이라며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 철수하지 않고 오히려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 러시아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빙그레 해외수출팀 신재헌 과장은 "꽃게랑의 경우 해산물 가격이 비싸고 감자 스낵이 주종을 이루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비싼 꽃게 맛을 볼 수 있다'고 마케팅을 펼쳐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제과는 민트·시나몬 등 중동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으로 만든 제품을 앞세워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리온은 중국 명나라 해상 영웅 정허(鄭和)를 등장시킨 애니메이션 광고로 중국인들의 눈길을 모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계는 한국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며 '혹독한 훈련'을 했다"며 "세계인의 다양한 입맛을 신경 써야 하는 식품 산업은 한국인의 스피드와 감각에도 맞는 분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