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계의 최고 원로이자 통합주의 헌법이론의 태두로 불리는 허영(74)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흥미진진했다. 허 이사장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지치지 않는 열정과 명쾌한 논리로 최근의 정치 사회적 현안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고언을 쏟아냈다.

올 초 일부 판사의 이른바 ‘튀는 판결’에 대해 “이념에 따른 심판이며 법의 정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판결”이라면서 “몰상식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우리법연구회는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였다.

허 이사장은 지금도 “법이라는 잣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재판부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면 그건 올바른 판결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사건 당사자로서는 로또나 복권추첨 하는 것과 다른 게 뭐냐는 것이다.

“법에 따라 심판해야지 자기 이념에 따라 심판하면 되겠습니까. 법이라는 것 자체가 상식이에요. ‘사회상식이 규범화된 것이 곧 법’인데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을 한다면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죠. 그 판사의 이념에 따라 이미 결론을 내놓고 끼워 맞추는 판결로 볼 수밖에….”

―그럼 올바른 판결이란 어떤 겁니까.

“판결의 유일한 기준은 법입니다. 헌법재판의 경우는 헌법 자체가 정치규범이기 때문에 합법성의 기준과 합목적성의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 법원은 달라요. 합법성만을 기준으로 판결하면 됩니다. 거기에 합목적성이 개입되면 절대로 안돼요. 합목적성이 개입되는 순간 잘못된 판결이 나옵니다. 오로지 무엇이 법이냐, 어떤 것이 법의 정신에 가깝냐,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상식에 맞느냐만 고려하면 되죠.”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老)학자의 말문이 터졌다. “법관의 독립성이라고요? 법관의 양심요? 법관의 양심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양심, 직업인으로서의 양심이지 인간 아무개의 양심이 아니에요. 직업인으로서 법관의 양심은 법에 귀속될 수밖에 없어요. 개인의 양심을 거기다 들이대면 절대 안돼요. 거꾸로 법에 입각한 법관의 양심에 어긋나는 정치적 외압이 들어오면 법관의 양심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관의 양심이 허용하지 않으니까.”

재밌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대학 교수 시절 ‘한 인기’ 했다는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글쎄 뭐 재밌다고들 그러는데 어떤 교수인들 그렇게 못하겠습니까. 하하하.” 허 이사장이 겸양을 발휘했다. 실은 허 이사장은 이미 연세대 교수 시절 딱딱한 헌법이론을 특유의 열정으로 엮어내는 명강의로 유명했다.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허 이사장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위헌소송이 진행되던 지난 2004년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 헌법적인 규범성을 갖는다”는 이른바 ‘헌법 관습법론’으로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란을 키워오며 가장 뜨거웠던 현안으로 타올랐던 세종시 수정안 법안 처리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죠. 지금 현재로서는 정부 원안으로 가도록 결정이 됐지만, 이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까지 계속될 겁니다. 이 문제에 제일 책임을 많이 져야 할 사람(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죽었으니 원망해도 소용없고. 그 다음으로 책임질 사람은 박근혜씨입니다. 박씨가 다음에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두고두고 골치 아플 거예요. 자신의 업보입니다.”

허 이사장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정운찬 국무총리 책임론이 나오는데, 충청도 총리 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정치적으로 풀었어야죠. 이런 면에서는 박근혜씨도 책임져야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씨 하나 끌어안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2007년) 때 이명박씨가 됐고 박근혜씨가 페어 플레이를 하면서 깨끗이 물러났는데, 그때부터 화합해서 박근혜씨를 끌어들였어야 했어요.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주변에서 어떤 친구들이 어드바이스(조언)했는지는 몰라도 (박씨를) 소외시키니까 앙금이 남은 것 아니겠어요.”

―수정안이 폐기되니까 이제 ‘+α(알파)’ 요구가 나오던데요.

“그게 됩니까. 다른 건 몰라도 기업이 가려고 하겠습니까. 충청도 사람들 얻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뭐가 돌아오겠어요. 유령도시밖에 안될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는 수정안이라는 것,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국가적으로나 현지 주민들에게 더 나았을 겁니다.”

―세종시 논란의 본질이 뭡니까. 아무리 봐도 이념 논쟁이나 보혁 싸움도 아닌 것 같고.

“이념 논쟁은 무슨…. 표 논쟁이지. 선거전이지. 표를 의식한 선거 전략 싸움이지 이념과 아무 관계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재미 좀 봤다’고 했던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대통령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충청도로 수도 이전하겠다고 하니 표가 나온 거지. 김대중씨가 김종필씨 표 끌어들여서 대통령 되는 것을 보고 충청도 표가 되게 중요하다는 걸 안 것 아닙니까. 이회창씨도 대선에서 계속 안되니까 충청도를 얻으면 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고. 민주당도 충청도 표 없이는 아무 것도 안되니까. 세종시 논쟁은 시작부터 표를 의식한 거였고 지금까지도 표 싸움이죠.”

―원로 헌법학자로서 세종시 논란의 바른 해법은 뭡니까.

“저는 수도 분할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디지털시대라고 하지만, 지금도 경기도 과천에 청사를 둔 장관들이 서울에 따로 사무실 두고 있는 거 아시죠. 하물며 충청도에 정부청사가 가면 툭하면 국회에 와야 하는데 무슨 행정이 되겠으며 거기 행정부처가 간다고 해서 누가 따라가겠어요.”

허 이사장은 독일에서 헌법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땄고 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누구보다 독일을 잘 아는 허 이사장은 행정부처가 둘로 쪼개진 독일의 실패를 거론했다. “독일이 통일된 후 수도를 베를린으로 이전하면서 본에 10개의 중앙부처를 남겨뒀습니다. 유일하게 본이 혜택을 본 것은 베를린과 본 사이에 특급열차를 하루 2번 운행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 외에는 어떤 메리트도 없습니다. 대신 무슨 부작용이 생겼는지 아세요. 이혼가정이 늘어났습니다. 집 따로 직장 따로 하면서 남자 혼자 있다 보니 주변에 여성들이 들끓고, 풍기가 문란해지고, 퇴폐문화가 만연하고….”

거침이 없다. 하긴, 평생 강단에서 후학들을 길러내면서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학문 외길을 걸어온 노학자에게 뭐 아쉬울 것이 있으랴.

“제가 정치적인 야망을 통해서 감투를 쓰려 했다면 벌써 썼죠. 전두환 대통령 아들 전재용이 내 제자예요. 그때 청와대로 불려갔죠.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이 좋아하는 은사라며 저녁을 대접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도 기회가 있었어요. 직접 전화가 왔더라구요.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의도가 명백해서 사양했어요. 면전에서 제안하면 ‘노’라고 하기 힘들 것 같아서.”

―감투 쓰는 걸 왜 그렇게 피하셨습니까.

“우리 헌정사를 보면 교수직에 있던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성공한 사례가 없어요. 스타일만 구기고 나왔고 이용만 당하고 나왔어요. 독일에 칼 슈미트라는 위대한 학자가 있었는데 자신의 헌법이론을 제공했지만 결국 히틀러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았냐 하면, 학자의 길만 간다 하는 겁니다.”

허 이사장은 ‘천만다행히도’ 아내나 자식들이 자신이 감투 쓰는 것 결사 반대했다고 밝혔다. 자식들의 반대 논리는 하나, ‘아버지는 성격상 타협을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 정치판에서는 얼렁뚱땅 타협도 하고 거짓말도 해야 하는데 그런 거 하루도 못 버틸 것 같아요. 뭐든 집어던지고 나올 사람인데 며칠 장관 했다는 오점만 남기니까 하지 말라고 가족들이 많이 말렸어요. 위대한 헌법학자로 있는 게 빛이 난다고요.”

다시 현안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운찬 총리 진퇴문제와 함께 불거지고 있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공유’ 문제 등에 대한 원로 헌법학자의 견해는 어떠할까.

“사실은 우리 헌법상 총리는 권한이 많아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지. 예를 들어 총리에게는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이 있어요. 그런데 총리가 할 수 있나요. 대통령이 명단 다 짜서 내려보내면 그대로 다시 올리는 거 아닙니까. 헌법엔 또 총리에게 ‘국정통할권’이 있다고 해놨습니다. 근데 실질적인 통할권은 없죠.”

허 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톤이 높아졌다. “장관은 물론이고 요즘 무슨 모임이니 무슨 회니 하는 거 많이 나오던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청와대랑 직거래하는데 무슨 통할이 되겠어요.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무총리는 얼굴마담이죠. 방탄조끼 역할밖에 못해요. 대통령이 ‘난 언터처블(건드리면 안되는 사람)이다. 나 대신 여기 총리가 있으니까 이 사람 때려라’ 이게 국무총리에요. 우리 헌정사상 총리가 가장 힘을 쓸 여건에 있었던 건 김종필씨 한 명이었습니다. DJP연합으로 공동정권 탄생시킨 사람이니까. 헌법상 주어진 권한만 제대로 행사하게 해도 대통령과 권한을 나누는 책임총리는 되게 되어 있습니다.”

―총리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고 계시죠.

“제도적으로 총리는 불필요합니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동의를 받는 것 이외에는 민주적 정통성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도 국가 유사 시에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돼 있습니다. 60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 유고 시에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하면서 정당성이 부족하니까 군부에 휘둘리고 결국 넘겨주고 나온 거 아닙니까.”

―총리제도의 대안은 뭡니까.

“총리제도를 폐지하고 부통령제도를 만드는 거죠.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뽑아야 합니다. 국민이 뽑아준 부통령이라면 대통령 유고 시 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때처럼 그렇게 휘둘리지는 않을 겁니다. 요즘 지방선거에서 뽑힌 민선 지사들이나 단체장들 기고만장한 것 보세요. 도민들 힘 믿고 그러는데 국민이 뽑아준 부통령의 힘은 어떻겠어요. 대통령이 그저 임명하는 총리와는 정통성에 있어 천지차이죠.”

―이번에 새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정됐습니다.

“그 사람 (대통령에게) 직언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직언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 실장이 하는 게 뭡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라 ‘그건 아닙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죠. 힘들죠. 하지만 그 정도의 대가가 있어야죠. 그런 사람을 실장 시켰을까 몰라. 하하하.”

허 이사장은 통합주의 헌법이론을 한국에 도입하고 체계화한 학자다. 헌법은 사회통합과 국민통합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그 이론의 주요한 틀이다. 통합을 위해서는 국민이 함께 느끼는 ‘공감적 가치’가 중요하며, 공감적 가치를 알려면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맥락에서 허 교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국가 창설적’ 가치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하지만…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나만의 자유가 아닌 모두의 자유입니다. 나의 자유는 내 이웃의 코끝에서 끝나야 하는 법이죠. 내가 팔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만큼 옆 사람도 팔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올바른 의사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 헌법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자유는 공공의 이익, 타인의 명예, 공중 도덕, 사회 윤리 같은 것을 침해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허 이사장은 따라서 ‘조직화된 소수’가 서울광장을 독차지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사이버공간이나 인터넷에서 악플이 넘쳐나는 것도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평생 대학 강단에서 헌법을 강의해온 허 이사장은 제헌절을 며칠 앞두고 각별한 감회가 있는 듯했다. “우리 헌법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헌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대 헌법 중에는 비교적 국민의 공감적 가치를 수용한 헌법이고 제일 오랜 기간 규범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정사상 23년간이나 지속된 헌법은 없잖아요. 하지만….”

허 이사장의 눈에는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함으로써 정당민주주의가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국민이 짜준 정치구도 안에서 절충과 타협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가 꽃 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나의 자유만 소중하고 나의 뜻만 100% 관철하려 하며 나의 목소리만 키우면 되는 줄 아는 사회문화도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장 좋아하는 법언(法言)을 묻자 ‘법은 상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모두 상식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세종시 논란도 상식에 입각해서 판단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노교수의 말 속에 진한 아쉬움이 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