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프리토리아시 외곽 빈민촌 이르스테르스트(Eersterust)에 사는 12살 어린이 크웬 부이스(Buys)는 HIV(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다. 에이즈 환자였던 아빠와 엄마는 몇 년 전 죽었고,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부이스는 학교가 끝나면 자기처럼 HIV에 감염됐거나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정부 보조 시설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에서 지낸다. 지난달 21일, 부이스는 얇은 나무벽 위에 양철지붕을 씌운 이곳 교실에서 또래 아이들 20여명과 함께 숙제를 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아이는 "의사가 돼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고 했다. 부이스는 아직 자신이 HIV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다. 자원봉사자 케빈 리틀러(58)씨는 "어린 아이가 받을 충격이 크고, 마을에서 낙인 찍혀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일주일 뒤 부이스는 서클 오브 라이프에서 보이지 않았다. 리틀러씨는 "또 아파서 집에서 쉬는 것 같다"고 했다. 유엔의 에이즈 전담기구인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현재 남아공에서 부모로부터 병을 물려받아 HIV에 감염된 아이들(15세 이하)이 28만명, 에이즈로 부모가 사망해 생겨난 고아(18세 이하)는 14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남아공의 15세 이상 HIV 감염자와 에이즈 환자 수는 570만명으로 세계 1위다. 남아공 인구 4800만명의 12%에 해당한다.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99년 10만명에서 작년 40만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새로 HIV에 감염된 사람 수도 50만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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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남아공 빈민촌 이르스테르스트(Eersterust)의 정부 보조시설‘서클 오브 라이프’에 모인 아이들.
모두 HIV에 감염됐거나 에이즈로 부모와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이르스테르스트=전현석 특파원 winwin@chosun.com
 
서클 오브 라이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치 호스피스(Each Hospice). 지난달 28일 그곳에서 에이즈 환자 조지 데이비드 탄지나(Tangeena·41)씨가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탄지나씨는 올 2월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에이즈 판정을 받았다. 탄지나씨는 1996년 결혼 이후에도 부인 외에 다른 여성들과 잠자리를 같이 해왔다. 그는 에이즈와 함께 결핵도 앓고 있다.

탄지나씨는 에이즈에 걸리는 남아공 남성의 전형이다. ▲매년 2명 이상의 여성들과 자유롭게 성생활을 하고(15~49세 남성 34%)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며(25~49세 남성 44%) ▲결핵으로 병세가 악화됐다(에이즈 환자 중 결핵치료 병행 42%). 프리토리아대 M. J. 모잘레파(Mojalefa·아프리카 언어학) 교수는 "에이즈가 빠르게 확산되던 1990년대 중후반 정부가 흑백 정권 교체에 신경 쓰느라 에이즈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에서 에이즈 예방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봉사단체 '휴마나 피플 투 피플(Humana People to People)'의 토르 토벤센 부대표는 "새 에이즈 치료약 개발보다 의식을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공공기관이나 병원 화장실에 콘돔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사람들이 잘 가져가지 않아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빈곤층은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 의사 대신 주술사를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