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김태현(14ㆍ가명)군은 방 한 칸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여든을 넘긴 할머니와 함께 사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다. 어렸을 때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집을 나가 버렸다.

태현이는 취학 전 가정에서 기초적인 학습 지도를 받을 기회가 없어 초등학교 때까지는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중학교에 올라 와서야 책을 곧잘 읽고 이해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데, 그러고 나니 영어와 수학이 골치를 썩이고 있다. 친구들이 선행학습이다 뭐다 해서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먼저 동안에도, 기초를 다질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다니지는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다니지 못한다. 왜 안 다니냐고 물었더니 "학원은 별로 재미가 없어서..."라며 말꼬리를 흐려 버리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계층 격차-가난의 가족력

교육의 양극화는 부모 세대의 불평등을 다음 세대로까지 전이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지만, 어디까지나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 다닐 기회를 모두에게 준다는 의미일 뿐.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은 출발점부터가 다른 게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다음 세대의 빈부 격차마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종의 '가족력(家族歷)'이 되어 버리고 만다.

소득 수준에 따라 배울 기회가 불평등하게 제공된다는 점은 통계청이 지난해 실시한 사교육비 실태 조사에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가구 월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정 자녀의 사교육 참여율은 91.1%, 월평균 51만 4,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100만원 미만인 가정에서는 35.3%만이 사교육이 참여하고 한 달에 쓰는 비용도 6만 1,000원에 불과했다.

기회의 불평등은 고스란히 성적에 반영됐다. 학교 성적 상위 10% 이내 학생들은 87%가 사교육에 참여하며 월평균 31만 9,000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한다고 답한 것에 반해, 학교 성적 하위 20% 학생들은 50%만 사교육에 참여하는 동시에 월평균 13만 9,000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적과 사교육에 대한 투자 사이에 정확히 정비례하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에서 시작된 격차는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쳐 최종적으로 사회적 계급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 부모의 경제력을 업고 강남권 명문고나 특목고에 입학하면, 좋은 대학을 발판으로 삼아 선망하는 직업을 얻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신임 판사 138명 중 38명(27.5%)이 특수목적고 출신이고, 강남ㆍ서초ㆍ송파구 일반고 출신이 13명(9.4%)이었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수재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법관 자리마저, 특목고 또는 강남 출신이 장악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지역 격차-결국엔 강남이 이긴다

계층간 교육 불균형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지역간 격차다. 지난해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충북 옥천군 학교들이 거둔 성적은 도농(都農)의 교육 인프라 차이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옥천의 초등학교는 국어, 사회, 과학에서 보통 이상의 성취도를 거둔 비율이 전국 180개 지역교육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수학(2위)과 영어(3위)도 최상위권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기적의 '유효기간'은 딱 초등학교까지였다. 중3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은 전국 평균 정도 수준에 머물렀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과 보육을 병행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맞춤 학습이 효과를 거뒀지만 교육 과정이 어려워지는 중학생 때부터는 효과를 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며 "학원을 비롯한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영향이 드러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 옥천군 내 사설학원은 입시와 예체능, 직업 교육 분야 등을 다 합쳐도 60개. 지난 9일 찾은 옥천 읍내에서는 입시학원 간판을 거의 찾기 어려웠다. 2,005개의 사설학원과 2,077개의 교습소가 대치동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강남과는 천양지차다.

이에 비해 서울 강남의 중3 학생 국ㆍ영ㆍ수 성적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초등학생와 중학생 성적 간 편차 역시 가장 적다. 사교육의 힘으로 성적을 떠받치고 있다는 얘기다. 사교육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사회(25등)와 과학(30등)에서 강남 중학생의 성적이 중상위권에 그쳤다는 점도 사교육의 힘을 보여주는 반증이다.